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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장

총, 균, 쇠나의 첫 인류 문명 역사서

un****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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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와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기아로 죽는 아이들과 난민들을 후원해 오며 참담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왜 아프리카는 굶주리고 왜 시리아 난민들은 나라 없는 신세가 되었나? <총,균,쇠>는 그 원인에 대한 탐구와 사고의 방향을 잡아준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책의 초반부에 아타우알파 생포사건을 자세히 다루는데 이 사건은 유럽은 가졌으나 잉카족은 가지지 못했던 군사기술, 전염병, 해양 기술, 정치조직, 문자 등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왜 유럽은 가졌고 잉카족은 아니었나?

그 모든 직접적 요인들의 시작은 ‘식량 생산’이었다. 우리가 장난스레 내뱉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지’라는 말은 원초적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고대 인류사를 훑어 보면 일단 식량 생산이 원활히 이루어진 후에는 높은 인구 밀도, 정주형 생활, 계급의 분화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식량 생산은 절대적으로 지리환경적 요건에 좌우된다는 것이 <총,균,쇠>의 핵심이다.

야생식물의 작물화에 있어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기후적, 생태적으로 유리했다. 지역에 따라 작물화의 성공여부가 다른 것이 그 지역 원주민들의 똑똑함이나 부지런함의 차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20만 종의 야생식물 중 고작 수백 종이 작물화되었는데 이 모두 이미 수천 년 전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즉 유용한 야생 식물은 이미 고대인이 모조리 작물화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가축의 유무를 문명사에서 중요하게 보는데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축의 쓸모, 즉 농사나 전쟁에 이용되는 것 말고 각종 병원균의 온상으로써의 역할이 매우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은 학부시절 미생물학 교수님의 추천서였다.) 유럽인이 옮겨온 균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약 95%가 희생되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렇듯 중요한 가축화에 있어서도 유라시아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는데 가축화 가능한 후보종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추가적인 가축화가 어렵다고 하니 비유라시아인들은 애초에 선택지가 좋지 못했던 것이지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탓은 아닌 것이다.

이에 더해 대륙의 축의 방향마저 유라시아가 우위에 있다. 동서로 긴 유라시아는 같은 위도상의 지역들이 길게 이어져 기후 및 생태가 유사하므로 가축과 작물의 확산이 빨랐고 기술의 전파도 원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역에 따른 식량생산의 불균등은 문자와 기술 발달로도 계속 이어진다. 초기 문자는 정치 관료들이 사용하는 것이었고 그들을 먹여 살릴 잉여 식량은 필수 선행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기술 발달 역시 정주형 생활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자가 촉매 작용을 일으키는 기술의 특성상 높은 인구밀도 사회가 유리했다.

이리하여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이룬 국가들은 이를 정당화해 주는 종교와 결합해 그 권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세력을 밖으로 확장함에 따라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거의 말살되다시피 했다.

이쯤 되면 대륙 간 ‘불균형’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불합리해 보이는 문제는 꼭 대륙 전체를 놓고 볼 때만 드는 의문이 아니다. 아프리카 반투족의 팽창이나 뉴질랜드의 머스킷 전쟁의 예만 보더라도 한 대륙 안에서도 식량이든 총이든 선점한 종족이 우위에 서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나는 ‘시대’ ‘국적’ ‘부모’ ‘성별’ 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태생부터 ‘운’에 좌우되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한 개인의 인생사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명사에서도 ‘운’이 중요하다는 것은 <총,균,쇠>를 찬찬히 읽어보면 충분이 수긍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능력주의 신화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어쩌다가 시간과 장소를 잘 타고나서’ 가축과 농작물을 갖게 된 ‘우연’ 덕분에 흥하게 된 민족의 이야기라니.

결국 한번 시작이 늦으면 가망이 없는 걸까? 시작이 빠른 것은 분명 이점이지만 그것이 계속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도 그 선발 간격을 추월 당한 뒤에는 더는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고 한다.

B.C. 8500년 전, 풍족한 수렵채집 생활에 만족하며 농경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결국은 식량생산자들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던 것처럼 한때 번창하더라도 안일하게 있다간 도태될 수 있다. 한편, 꼬투리가 터지지 않는 완두콩이나 줄기가 퍼지지 않는 밀처럼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결과적으로는 우월한 종이 된 것을 보면 어쩌면 인생지사도 새옹지마일지 모른다

특히 ‘유럽은 분열되어 있어 수많은 군주 가운데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할 한 명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충분히 넓은 지역이라면 어떤 특정한 시대를 보더라도 그곳 사회들의 일부는 혁신적일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은 오늘날 우리의 지향점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비록 우리나라가 국토는 좁지만 다양성을 갖춘다면 ‘최적 분열의 법칙’에 맞게 혁신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 개인의 입장에서도 여러 타이탄의 도구들을 갖추고 있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1만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아우르는 인류 문명사를 책 한 권으로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통찰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서양 백인 남성의 편향적 시각을 지니지 않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과 속도로 흥하고 망하는 이야기다. 그럼 한 단계 위로 스케일을 키워보면 지구상 그 수많은 종 가운데 하필 호모 사피엔스가 우세종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여기에는 또 어떤 우연이 작용했는지 궁금해진다. 몇 년 전 읽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꺼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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